1) 정신병 증상의 발생은 불씨(성격문제)와 바람(스트레스)이 만나서 발생되는 것이다.

2) 정신병(불꽃)증상에는 겉불꽃(겉 증상)과 속불꽃(속 증상)이 있다.
겉불꽃(겉 증상) : 헛소리, 이상한 행동, 망상, 환청, 환시
속불꽃(속 증상) : 정서의 무감각 상태
연상(사고)의 장애
자폐적 생활
양극단의 감정 및 태도

3) 불씨(성격문제) : 불꽃(정신증상)이 타오르기 전에는 보통 눈에 보이지 않고 관심대상이 되지 않고 평소 조용한 내성적 성격, 고지식한 성격, 유약한 성격, 말이 없는 성격, 의심 이 많은 성격정도가 가족 등 주위에 인지된다.
큰 불씨 : 정신분열성 성격 장애
정신분열성 성격 장애
편집성 성격 장애
작은 불씨 : 히스테리성 성격 장애
회피성 성격 장애
의존성 성격 장애

큰 불씨는 외부의 별 다른 바람(스트레스)없이도 불꽃(증상)을 일으키며 명백한 스트레스 없이 자기 과민성, 자기 예민성에 의해 발병한다. 거의 자연 발생적으로 자아가 붕괴한다.

작은 불씨의 경우는 상당한 바람(스트레스), 대인관계에서의 충격(사귀던 사람에게서 배신을 당하거나 거절당한 경우, 이혼, 사별, 실직, 실패)으로 인해 증상이 발생한다.
즉 불꽃은 증상이고 불씨는 성격이고 바람은 스트레스이다.
불꽃, 불씨, 바람의 총합적인 현상으로 증상이 발발한다.
따라서 불꽃을 없애거나 줄이는 것은 병을 관리, 조절하는 것뿐이고, 불씨를 없애는 것이 근본치유, 완치이다.
그러나 세상의 보통 치료는 눈에 보이는 불꽃 진화에만 관심이 있을 뿐, 불꽃을 키우는 불씨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보지도 못 한다.
치료의 핵심은 불씨 제거이다.
불씨가 없으면 아무리 바람(스트레스)이 불어도 불꽃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데 불꽃만 약물치료로 줄여 놓고는 치료되었다고 하거나 불꽃을 줄여 놓은 이후에 불씨 제거 작업을 해야 하는데 대충 해버리므로 불씨가 다시 바람을 만나면 불꽃이 또 타오르게 된다.
약물은 불꽃을 줄이는 목적으로 투여되며 불씨를 제거하기 위한 전 단계로 활용해야 하는데 불꽃에만 관심이 있으면 평생 약만으로 시간을 죽이게 된다.




우울, 불안증은 피부가 타박상을 입거나 찢어지는 경우이고, 정신병 발병은 뼈가 부러지는 경우이다.
타박상이나 찢어지는 경우는 대개 적당히 아물게 되고 약간 상처가 남게되나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반복적으로 타박상을 입거나 찢어지게 되면 문제가 더 크게 발생하지만...

정신병 발병은 원래

1) 칼슘이 모자라든지, 원래 유약하여 뼈가 부실할 경우(원래 성격 구조가 취약하고 미세한 충격에도 무너지는 경우)

2) 뼈의 강도는 정상이나 강한 충격을 받거나, 약한 충격이라도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받게 된 경우의 골절(성격도, 자아도 보통 범위의 능력 안에 있었으나 삶의 우환, 반복 실패, 반복 스트레스 지속 처리 불가능 등으로 연속 충격 받을 경우)

3) 건강하고 강한 사람이었지만 워낙 일시에 큰 충격을 연속적으로 받은 사람.
튼튼한 뼈를 가지고 있었지만 통나무가 넘어지면서 깔려서 뼈가 부러진 경우. 이 경우는 누구도 뼈가 안 부러질 재간이 없다.

문제는 그 다음

1) 단순타박(생활상의 스트레스 받고 스스로 치유되거나 자연적으로 회복)
ex) 생활의 수많은 단순 실패, 좌절

2) 피부가 찢어지는 경우(생활상에서 충격을 받고 뼈는 안 부러 졌지만 피부가 째진 경우, 꿰매면 좋지만 그런 대로 흉터는 남은 채 치유된다)
ex) 우울증, 불안증, 적응장애(휴직, 휴학)

3) 골절
ex) 정신병발병
이 경우 환자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회복되지 않는다. 뼈에 약하게 금만 간 경우 쉬고 움직이지 않으면 회복되는 수가 있으나 골절이 일어난 경우에는 시간, 얼음찜질, 파스 등(단순 약물 치료)으로 뼈가 저절로 접합되지 않는 것이다. 이 경우는 빨리 수술하여 뼈를 재 접합시켜야 하며 그 후 접합이 되면 그 동안 사용하지 않아 굳어져 버리거나 위축된 근육, 인대 등을 물리치료 받아야한다.

마찬가지로 정신병 발병은 정신이(뼈) 순간적으로 부러진 경우인데 수술(스트레스관리, 위기관리, 상담치료, 보조 약물 치료..)받은 후 물리치료(상담, 근본성격개선, 재 적응 프로그램...)받아야 원래 상태로의 회복이 가능하다. 처음에는 단순골절(적응문제,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 대처, 스트레스 처리 문제, 대인관계의 문제...)이 재 접합 수술(근본성격 상담치료, 환경파악, 대처방법, 벗어나는 방법, 미연에 방지하는 방법)하지 않고 시간을 끌면서 파스만 바르거나 물찜질만 하면(단순 약물치료, 병원가서 문안 인사하기..)영구히 불구(정신병)가 된다.

즉 처음에는 정신병이 아니었는데 조치가 잘못되어 결국 불구(정신병)가 되고 마는 것이다.
따라서 골절 상태를 겉에 약만 바르거나 파스만 뿌리는 꼴로 초기 병 상태를 적절한 노력 없이 방치해 병을 키워 나가는 격이다.


세상에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성격은 개조 될 수 있다.
성격은 바뀌지 않으니 그 스타일에 맞추어서 그 성질을 인정하고 그대로 살아야 한다.

첫째. 성격은 개조 될 수 있다는 견해는 사실 일부 개선, 개조되는 듯이 보일 수 있다. 남에게 단순히 앞에 나서서 이야기하기 힘든 소심한 성격, 내성적 성격, 소극적 성격, 불안형 성격(그로 인한 말 더듬, 발표 미숙, 대중 앞에서 말하기의 공포 두려움)등은 행동치료 (실제로 남 앞에서 해보기, 불안감을 견디고 오히려 더 많은 사람 앞에서 억지로 해보기, 그것도 두려우면 머리 속에서 가상현실을 만들어 놓고 혼자서 리허설 해 보기)에 의해서 다소간 혹은 일부에서 상당히 좋아지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는 지극히 일부이며 성격의 경향성은 뿌리가 깊어서 몇 마디 말이나 충고 교육 훈련에 의해서 변화되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성격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고치려고 해 보았지만 거의 모두 실패로 끝난다.
태백산 물이 떨어져 낙동강, 한강으로 결정 나서 한쪽으로 흐르기 시작하면 그 도도한 물줄기를 어떻게 돌린다는 말인가?
성격 개조훈련은 표면적으로 배짱 키우기, 약간의 제스처와 기술을 배우는 것에 불과하다.

생각해 보라! 내면의 수많은 생각, 가치관, 선입관, 자기도 모르는 무의식적 힘에 의해 결정 나는 성격의 경향(흐름)을 무슨 수로 바꿔서 새로운 인간이 된다는 말인가? 나름대로 모르는 사이에 수많은 고통을 겪다가 깨달음처럼, 어느 계기 어느 사건을 통해 정말 드라마틱하게 성격이 바뀌어지는 경우는 정말 소수의 철학적, 종교적 경우에서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성격 개조라는 것은 속은 안 바뀌고 겉포장만 바꾸는 것이다.
따라서 근본 변화가 아니다.

둘째 : 위에서 말한 이유로 인해 성격은 바꿀 수도 없고 바뀌지도 않으니 그대로 팔자대로 운명에 순응(?) 하면서 살자고 하는 주장이다.
그러나 성격은 사과 1개처럼 단일한 구조가 아니고 성격은 한 개인 안에서도 도움이 되는 건강한 성격 부분과 자기를 망치고 괴롭히는 병적인 성격 부분도 있다.
또한 하나의 독특한 성격(ex: 꼼꼼한 성격)은 어느 구조에서는 장점이요(일하는데) 어느 구조에서는 단점이다(가정에서의 지나친 잔소리) 성격 개선이란 100점을 0점으로 없애는 것이 아니라 100이라는 경향을 2030만 줄여도 자신의 지나친 갈등, 고통, 또 주위와의 갈등, 어려움도 많이 줄어들게 된다.

어떻게 지속적으로 자기 인생을 망치고 괴로움을 주고 타인과의 관계를 망치는 자기 성격의 일부를 알면서 그냥 살아갈 수가 있나?
이것은 마치 신체의 어느 부분에 암 덩어리가 있는데, 그것을 치유하지 않고 그대로 살아가라는 정말 무지한 소리에 속한다.
물론 건물내의 스테인레스 파이프관을 어떻게 동 파이프관으로 모두 바꿀 수가 있나?
그러나 어느 부분의 파이프가 균열이 되어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수돗물이 방안으로 흐르기 시작한다면 그 부분은 해체하여 고칠 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 부분을 파악하고 고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이 두 번째 견해 역시 너무도 무모하고 무지한 일이 될 것이다(성격변화, 성격개선, 성격치료 어떻게 할 수 있나? 를 참조하시오)

그렇다면 성격은 바뀌는가? 아니 우리는 성장이라는 개념을 쓸 수 있을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자신을 손해 입히고 괴롭히는 일부 성격의 문제는 유능한 정신분석 의사와 자기 분석(일종의 정신 분석적 기법을 동원한)을 하게되면 그때 가능하다.
성격은 단순히 설명, 이해, 교육으로는 크게 변모하지 않고, 그 때 들을 때만 잠시 머리 속의 개념 속으로만 이해 할 뿐이다.
마치 자동차 운전을 자동차를 타고서 배워야 알지 책만 보고 머리 속에서 개념적으로 이해한 것만으로는 실제 감을 배울 수 없는 것과 같다.
수많은 성격 이론서, 상담서를 읽는 것은 바로 운전을 책으로만 이해하는 것이다. 문제는 체득이다. 마치 운전을 하듯, 자전거를 타듯, 수영을 하듯 몸에 붙는 실행학습이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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